[권태건의 내러티브 리포트] ‘호남선교 1번지’ 나주교회(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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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은행으로 쓰였던 건물이라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일까. 유난히도 유서 깊어 보였다. 안내판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으로 사용하던 이 건물은 앞으로 역사문화관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라고 한다.
박 목사는 이 건물이 역사문화관으로 사용되는 게 못내 아쉬운 듯 보였다. 나주 구도심에서 오랫동안 병원을 운영해온 원장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자던 박 목사가 갑자기 이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 이유가 궁금했다. 평소 역사적인 건물이나 유물에 관심이 많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 건물을 통해 뭔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잠깐, 이 건물에 얼마 전까지 병원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기자의 표정을 읽은 것일까. 박 목사는 고조현 원장에 대해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병원을 운영한 지 수십 년은 됐다고 그래요. 그러니 고 원장님께 진료받으신 분들도 다들 역사의 증인이나 다름없죠”
순간 커다란 바윗덩이가 뒤통수를 내리치는 듯했다. 어쩌면 박 목사는 내러티브를 기가 막히게 다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 점심을 먹었던 식당도 이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교회에서 곰탕집, 오래된 병원 건물 그리고 함께 찾아가 볼 새 병원까지 일직선에 위치해 있었다. 무엇보다 이 낡은 건물을 경유해 가며 고조현 원장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그저 기자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일련의 일들 때문일까. 고조현 원장과의 만남이 내심 기대됐다.
얼마 전 새로 옮겨 온 건물답게 외관이 매끈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세월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얀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3분 전까지 살펴보던 건물과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안내데스크에 사정을 이야기하자 바로 옆 진료실에서 가운만큼이나 하얀 머릿결의 어르신이 고개를 내밀었다. 고조현 원장이었다. 그 시절 나주교회를 기억하고 있을 공산이 커 보였다.
“어떻게 오셨다고 하셨죠?”
진료실에서 의사를 마주하고 있으니 괜히 긴장됐다. 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병원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주사를 맞지 않기 위해 도망쳐 숨기도 했다. 그때 박 목사가 나섰다.
“원장님 지난번에 저 진료해 주신 거 기억하시죠? 저는 저쪽 위에 있는 나주교회 목사예요”
“그럼요. 기억하다마다!”
“여기 계신 분은 <재림신문>이라고 우리 교회 신문사 기자신데요. 나주교회를 취재하러 서울에서 오셨어요. 원장님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고 원장은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떠올려볼 만한 기억이 많을 것이다. 이내 감았던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기억하지 나주교회. 하지만 내가 말해 줄만한 것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고 원장은 교회에서 밀가루, 옥수수가루를 나눠주던 봉사를 기억했다. 하지만 나주교회 구교회에 대해서 그다지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단편적인 기억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젊은 시절에는 영산포에서 주로 생활했기 때문인 듯했다. 대신 잠시 후 진료 받으러 오기로 한 사람이 있는데, 어쩌면 나주교회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잠시 기다려 보라고 했다.
5분쯤 지났을까. 키 큰 어르신 한 분이 문을 열고 진료실에 들어섰다. 순간 이분이 고 원장이 귀띔한 사람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자와 박 목사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하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내가 말해 놓을 테니 조금 이따가 내가 부르면 와서 궁금한 거 물어봐요. 수액 맞으실 거니까 시간은 넉넉할 거예요”
잠시 후 마주한 어르신에게서도 구교회에 관한 역사의 토막을 들을 수 없었다. 고 원장과 마찬가지로 나주교회가 이웃들에게 베푼 사랑의 손길이 그의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나주교회는 나눔과 봉사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헌신으로 나주는 선교 110주년을 맞이한 것이었다.
모든 취재일정을 마치고 복귀하기 위해 나주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기차 시간까지 꽤 여유가 있었다. 스마트폰의 지도를 보면서 걷기 시작하자 수십 년의 세월이 유튜브에서 더블 클릭으로 건너뛰기라도 하듯 빠르게 변해갔다. 단층 건물로 가득하던 풍경이 이제는 2층, 3층짜리 상가건물로 대체되더니, 이내 아파트가 시야를 채웠다. 그리고 잠시 후 매우 현대적인 모습의 나주역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심 ‘구교회의 오래된 벽돌을 한 번 더 만져보고 올 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주교회가 움트던 110년 전의 나주는 지금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사람들의 왕래도 훨씬 잦았을 것이며, 성도들이 들어 올린 복음의 빛은 훨씬 멀리까지 비췄을 것이다. 동시에 110년 전 나주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도시였을 것이다. 나주의 주민들에게 지금의 구도심이 세상의 전부였을 것이며, 나주를 벗어나 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 110주년을 맞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나주는 어떤 도시일까. 혁신도시로 인해 발전과 쇠락이 극명하게 갈리는 곳일까. 110년의 역사 위에 원대한 비전을 간직한 곳일까. 열차 안에서 이번 취재기간 만났던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출발한 지 3시간이 채 흐르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나주를 찾았을 당시에 비하면 한반도는 아주 작아진 듯하다.
그런데 왜 이리도 복음이 퍼져 나가는 속도는 더뎌진 것처럼 느껴지는지, 열차에 내려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며 생각했다. 110년 전 나주에서 일어난 폭발적 선교가 역사를 넘어 오늘날에도 재현되길 바란다고. 그리고 그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지기 전에 구교회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길 바란다고. - 끝 -
* 그동안 <권태건의 내러티브 리포트> - ‘호남선교 1번지’ 나주교회 편을 애독해 주시고,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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